《역사 선생님이 들려주는 동아시아 맞수 열전》 리뷰
동아시아 맞수들을 통해 인간의 삶을 배우다
간혹 아예 사라져 버리곤 한다. 통계 속 숫자나 추상적 용어로만 드러나거나, 혹은 어떤 표현으로도 등장하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리곤 한다. 무엇이 사라진다는 것인가. ‘사람’이다. 어디에서 사라졌다는 것인가.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읽는 역사 교과서에서, (나의) 수많은 역사 수업에서. 최근 아시아 지역의 민족 운동을 다루다 수많은 인물을 평면적으로만 언급하며 넘어간 후 꽤 오랫동안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이런 우를 나는 종종 범한다.
자괴감에 빠져 있다가 읽기 시작한 《역사 선생님이 들려주는 동아시아 맞수 열전》. 이 책은 <전국 역사 교사 모임> 선생님들이 깊은 고민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지역의 다양한 맞수들 혹은 동지들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생동감 있게 풀어내고 있더랬다. 나조차도 몰랐던 사실을 새로 알게 되고, 인물 대비를 통해 시대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 시대를 우리가 살았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궁금해지는 인물이 많았다.
특히, 고종 황제와 메이지 덴노의 같지만 다른 삶의 순간들을 마주하며 한국과 일본의 근대화과정을, 이홍장과 이토 히로부미를 공통점과 차이점이 대비되는 순간들을 마주하며 중국과 근대화의 과정을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다. 역시 인간의 생각, 고민, 선택이 드러나야 그 시대의 중요성이 몸에 와닿는 느낌이 든다. 이들 외에도 룽훙과 윤치호, 박상진과 판보이쩌우, 이와쿠라 사절단과 보빙 사절단을 맞수로 설정하고 근대의 기로를 보여 주는 것이 탁월했다.
비슷한 신념과 행적을 보여 줬던 박헌영과 저우언라이에 대한 후대의 평가가 서로 다른 점을 ‘서로 다른 운명의 이인자’라는 흥미로운 제목으로 다루는 등 현대사의 인물들의 다양한 삶과 현재를 연결하는 것도 좋았다. 전근대 시대의 중요한 ‘맞수’ 중화와 오랑캐 부분은 중요한 근간이 되는 개념을 잘 짚어 준 것 같다. 선덕여왕과 무측천, 김마리아와 추근과 같이 여성들의 이야기도 반갑다. 모두 스물두 편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시대를 파악하고 인간의 삶과 고민을 이해하는 데 읽는 독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한편 이야기마다 말미마다 ‘더 생각해 볼까요?’에 세 가지 정도의 질문이 실려 있다. 글을 읽 는 데 그치지 않고 더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적절한 질문이 많아서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가장 좋았다. 수행평가나 수업 시간 발문으로 적극 활용하고 싶은 질문들이었다.
고진아
경기 향동고등학교 역사 교사입니다.
역사 교육으로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중입니다. 《역사 선생님이 들려주는 친절한 동아시아사》와 《한 컷 세계사》를 함께 썼습니다.